연애를 하는 사람 상당수는 이런 딜레마에 빠져든다.
내가 더 많이 좋아하고 사랑한 다는 것. 어쩔 수 없다. 사랑은 공평하지 않으니까. 처음 누가 더 좋아했건 그것이 끝까지 유지되건,
중간에 역전되던 아무튼 공평하게 사랑하는 사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래 행복했던 부부는 패스. 나의 영역이 아니다. 겨우 31살 먹은 미혼남이 논할 자격도 없는 듯 하고.)
그럼 발생하는 문제가 권력 불균형.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덜 사랑하는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줄 수 밖에 없다. 그 권력.
간단하지 않은가? 내가 아쉬우니 내가 먼저 연락하고 내가 더 그 사람에게 맞춰주려 애 쓰는 것. 상대가 열렬히 화답해 주고
고마워한다면 그 권력의 양도에도 불구하고 그저 행복에 겹겠지만. 아니라면...
마음이 아파온다. 저 사람은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나는 이렇게 타들어 가는데... 야속하고 서럽고 혼자 눈물도 찔끔 하려다
그래도 내가 남잔데 이까짓 일로 이럼 안되지. 마음 다잡고 강한 척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져 춥고 배고픈 것은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
야속한 마음에 삐져서 혼자 술을 마셔본다. ‘이번엔 내가 먼저 전화 안할꺼야. 넌 내가 궁금하지도 않냐?’ 그러다 결국 먼저 전화.
답변은 “지금 바쁜데, 나중에. 미안.” 하지만 전화기 너머엔 시끌벅적한 즐거운 소리가 들려오고. 난 초대받지 못한 애인이라는
느낌에 더 서글퍼온다. ‘아... 이봐... 나 좀... 꼭 내 입으로 이런 말 해야겠냐?’ 라고 혼잣말 하다가 예정에 없던 말술을 들이키고
장렬히 전사. 이런 패턴을 반복하다 어김없이 날아오는 카드 고지서엔 나의 한 달 간의 고민과 찌질함이 숫자화 되어 또 한 번
나의 모자람은 비웃는다. ‘이것이 내 찌질함의 가격이구나. 제기랄.’
처음엔 그저 만나줌이 기꺼워 이런 생각 할 겨를도 없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요구할 때 쯤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위에서 풀어 놓은 바. 연애를 하고 있음에도 행복하기보단 상처 받는 구간 되시겠다.
상대가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헤어지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연애라는 그 좋은 것을 하고는 있는데 아픈 것.
하여. 나름 해결책 찾은 것이 있다. 독립된 시간을 갖는 것. 상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닌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오히려
상대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 나의 구간을 갖는 것. 좀 떨어져서 나와 상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 조급함이 제법 사라진다.
그리고 꼭 상대와 함께 있지 않아도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는 법을
터득한다. 나의 경우는 혼자 가는 여행이었다. 혼자 훌쩍 떠나서 여행지에서 구입한 엽서를 보내기도 했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꼭 누군가에게 거기서 구입한 엽서를 보냈다. 문자나 사진을 전송하기보다는... 여긴 남원. 보고 싶다.
돌아가서 이야기 해줄게. 요정도.
상대가 나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면, 그래서 권력관계가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경우가 오면 상대는 오히려 이 구간을 자신에게
할애해 줄 것을 요구해온다. 부탁하기도 하고 따지기도 하고 애원하기도 한다. 이럴 때면 이미 상황이 역전 된 건지도 모른다.
꼭 함께 해서는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가끔은 너도 너만의 시간을 가져라고.’ 말해준다. 혼자 가보기 좋은 곳을 일러준다.
가끔은 떨어져서 보자고. 남원에서 네가 없으니 오히려 내가 몰랐던 너를 알 수 있었다. 너도 혼자 있는 시간속에서 나를 찾아봐.
하는 말을 해줬다. 마음이 식은거냐는 불안 섞인 핀잔을 듣겠지만 나는 늘 그래왔다 말해주면 수긍한다. 그 사람도 이미 오래 전부터
내가 그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처음엔 혼자 해결책으로 찾아낸 방법이지만 오랜 시간을 이렇게 해오니 알겠다. 꼭 서로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즐거움이 있고
이따금 떨어지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싸우고 난 다음 하루 종일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 끝내 답을 찾지 못하고 술에 취해 늦게 전화하기보다는,
내려놓고 훌쩍 떠나서 깨닫는 경우가 많다.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경우도 많았고.
난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연애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내 삶에 당신이 소중하지만 전부는 아닌 것으로.
나 역시 당신의 전부가 될 생각은 없다고. 그것이 오히려 소중한 연애를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되려는 사랑은
집착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집착이 연애를 하고 있음에도 행복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 같아서. 차라리 조금 부족해 보이는 듯. 은근한 사랑을 하고 싶다. 서른 넘어서 불같은 사랑을 하기엔 겁나서 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럼 또 어떤가. 난 지금도 좋은데.
--써놓고 보니 뭔 소리야? 뭐... 난 그냥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