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편지는 나에게 생생한 기쁨을 주었소.
내용이야 어떻든, 당신이 나한테 품고 있는 친밀감이 넘쳐흐르고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편지 내용이 나를 괴홉혔다는 점은 말해두어야겠소.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당신처럼 고귀한 정신을 그렇게까지 어지럽힐 줄은 미처 몰랐소.

그러나 내 결심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누구 못지않게 당신을 존경하고 있는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오.
설령 그것이 당신의 비난에 대한 반론이 된다 해도 말이오.

카이사르가 죽은 뒤 나에게 쏟아진 비난은 나도 잘 알고 있소.
그것은 모두 친구를 잃고 슬픔에 잠길 줄 밖에 모르는 나를 비난하는 것이었소.
존경하고 사랑하는 친구일뿐 아니라 보기드문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닥친 그 비참한 죽음에 대해
그저 분노할 줄밖에 모른 나를 비난하는 것이었소.

그들은 국익이 우정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소.
따라서 로마 국가에 이로운 카이사르의 죽음에 대해서는 설령 친구라 해도 눈물을 흘리면 안된다는 것이오.
나는 그런 고상한 견해에는 흥미가 없소.
솔직히 고백하면. 내 교양은 그렇게 현명한 지혜의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모양이오.

카이사르와 원로원파의 다툼에서도 나는 카이사르를 편들지 않았고, 카이사르의 행위에도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어려운 시기에 친구를 저버릴 마음이 나지 않았소.
내전이 일어난 뒤에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이우스 사이에 대화가 재개되도록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자부하오.

따라서 그 두사람의 대결이 내가 더 친애하는 쪽의 승리로 끝난 뒤에도,
나는 승자와의 친분 관계를 이용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탐한다는 것 생각할 수도 없었소.
그러기는커녕 카이사르가 단행한 금융 개혁으로 나는 큰 손실을 입었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카이사르는 우리 금융업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까지 단행했소.
그래도 카이사르가 관용베푼 덕에 반카이사르파 사람들도 계속 로마에 살 수 있어고 공직도 여전히 유지할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수는 없소.
그것이 허락되었기 때문에 '3.15' 때 칼을 휘두를 수도 있었지만 말이오.

그런데 어째서 나까지 그 배은망덕한 자들처럼 카이사르를 증오하고, 카이사르의 죽음을 기뻐해야 한단 말이오?
그들은 이렇게 말했소.
"우리가 암살을 결행하지 않았다면 당신들은 조만간 카이사르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 이라고.

이게 무슨 오만이오!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 고뇌하기는커녕,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카이사르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조차 금지하려 하고 있으니 말이오.
노예조차도 두려움이나 기쁨이나 고뇌를 느끼는 것은 자유인데,
폭군한테서 우리를 해방시켰다고 자칭하는 자들은 개인의 감정까지 지배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소?

나한테는 어떤 협박도 효과가 없을 것요.
아무리 내 지위를 위협해도, 나한테서 인간성과 친구로서의 의리까지 빼앗을 수는 없소.
죽음으로 협박해도 소용없소.
카이사르의 죽음을 보고,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죽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지 않을 수 없었소.
이제는 내 죽음과도 당당하게 맞설수 있을 것 같소.

그렇소. 분명히 말하지만, 내 소원은 카이사르의 죽음에 대해 모든 사람이 고뇌하는거요.

그렇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할 생각을 없소.
그러니깐 남들도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소.
내가 가장 경애한 친구이자 최고의 역량을 갖춘 인물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하도록 내버려두시오.

키케로여, 당신은 카이사르를 추모하는 경기대회 자금을 내가 책임진다는 소문을 듣고 나한테 편지를 쓴 모양인데.
나는 이것을 나 개인의 의무로 받아들였을 뿐, 거기에 정치적인 의미는 전혀 없소.
위대한 인물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사람을 기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경의가 담긴 선물을 하는 것 뿐이오.
나는 이 젊은이의 진지한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소.
그 청년이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것도 나에게는 더없는 기쁨이었소.

당신은 내가 집정관 안토니우스의 저택을 자주 찾아간다고 말했는데, 그건 사실이오.
내가 방문하는 목적은 단순한 인사치레지만, 당신은 안토니우스의 저택을 찾아가보면 알거요.
그곳은 이제 방문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는데, 그들 대다수는 현재의 최고 실력자를등에 없고 사리사욕을 노리는 자들이고,
개중에는 카이사르를 애도한다는 이유로 나를 비난한 자들까지 끼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요.

카이사르는 내가 누군가를 찾아가든, 누가 나를 찾아오든 상관하지 않았소.
설령 그 사람이 그의 적이라 해도, 나한테 그 사람을 사귀지 말라고 말한 적도 없을 뿐더러 불쾌감조차 내비친 적이 없었소.
그런데 나한테서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빼앗아간 자들은 내가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하여 하는 거요?
이런 정신 분야까지 참견하는 독재는 오래 계속될 리가 없소.
계속된다면 나는 로도스 섬에라도 은퇴하여 여생을 보낸 작정이오.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로도스 섬이라면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카이사르의 추억에 잠겨 나날을 보내 수 있을 테니까..

                                              ---로마인 이야기 5권 :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 p.411~p414 ---

어린 옥타비아누스에게 마티우스는 카이사르 추모 경기대회 후원을 해주게 됩니다.
이 추모 대회에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정계로 진출을 합니다..

이 마티우스의 편지가 왜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남아 있게 되었는지... 왠지 그 이유를 알듯합니다..

역사책의 한자락은 가끔 엉뚱한 장소와 시간에서 눈물 흘리게 만듭니다.

밀겔_미라지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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